‘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부당한 사퇴 압력을 가한 혐의 등으로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 영장이 26일 기각됐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행위에 대한 사실상 첫 사법적 판단이었던 만큼 관심을 끌었다. 영장은 기각될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유·무죄 판단도 아니다. 그런데 박정길 서울동부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내놓은 ‘기각 사유서’를 보면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수두룩하다. 청와대가 ‘전 정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의 범위 판단’ 등을 주문하면서 동원한 논리와 흡사해 ‘코드 사법’의 오해도 키웠다.

첫째, 박 판사는 기각 사유의 하나로 ‘최순실 일파의 국정 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한 사정’을 들었다. 전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도 국정 농단 세력의 일부이거나, 농단 세력에 빌붙어 적절한 감찰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단이 깔려 있다. 따라서 새 정부의 장관이 적극적으로 감찰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불법 여부 판단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다. 탄핵과 무관한 혐의에까지 이런 논리를 확대 적용했다면, 법리와 증거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둘째,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을 들었다. 관행이라도 불법으로 기소되면 단죄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도 관행이라고 항변했지만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관행이라고 해서 불법이 아닌 것은 아니어서 이런 판단은 영장을 기각하기 위한 핑계에 가깝다. 

셋째, ‘피의자가 퇴직했기 때문에 관련자들과 접촉이 쉽지 않다’며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것은 더 황당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은 왜 구속됐는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살아 있는 권력’인 청와대 연루 의혹이어서 퇴직 여부와 무관하게 증거 인멸 및 조작 가능성은 여전하고, 보기에 따라 더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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