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선이 지나가는 통로인 통신구 화재로 시민의 생활과 국가 기능이 국지적으로 마비된 사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주말이던 지난 24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의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는 인근 지역의 사회 안전망과 생활 인프라 작동을 멈추게 하며 사회적 대혼란을 불러왔고, 그 불통과 마비가 만 이틀이 지난 26일 오전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원인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IT 강국’ 자처를 민망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안보 우려도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초연결사회에서 국가 기간통신망의 불통은 국가 기능 마비와 직결됩니다. 이번 사태에, ‘내란 선동’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9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모의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그 연장선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2013년 자신이 주도한 조직의 모임에서 주요 통신시설 파괴로 북한을 돕는 방안을 모의하며, KT 혜화전화국을 거론했다고 합니다. KT 혜화지사는 2003년 웜 바이러스 공격을 받았을 때 전국 인터넷 불통으로 이어졌었고, 국내 인터넷망이 해외로 연결되는 ‘국제 관문국’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당시 모의는 실행되지 않았으나, 제진주 제주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정신병자나 간첩, 사회 혼란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통신구에 고의로 불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우려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한민국 세력의 공격 개연성이 엄존한다는 사실에 거듭 섬뜩해집니다.

그런데도 통신망 안전은 무방비나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KT 아현지사는 광통신 거점인데도, 통신구엔 불꽃 감지기나 스프링클러조차 없었습니다.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전화와 스마트폰·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지고, 병원의 진료 시스템, 경찰의 112신고 전화와 치안 업무 등까지 차질을 빚는 사태를 자초한 셈입니다. 오죽하면 ‘디지털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개탄까지 나왔습니다.  관련 회사는 물론 정부도 통신망 안전에 대한 전면 재점검과 철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합니다. 국가 안보까지 끔찍한 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더 이상 노출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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