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사들이 한국의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방송 출연을 모두 취소시키고 있습니다. 그제와 어제 주말 내내 도쿄 도심에서는 “한국과 단교”를 외치는 극우단체들의 반한시위도 벌어졌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문화 보복이라는 치졸한 방식으로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법원 판결에 이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TV아사히가 BTS의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전날 밤 취소한 데 이어 후지TV도 12월 5일과 12일 방송 예정인 ‘FNS 가요제’에 BTS의 출연을 타진했다가 9일 철회 결정을 내렸습니다. NHK방송도 12월 31일 방송 예정이던 연말 음악 프로에 BTS의 첫 출연을 검토했지만 보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일본 방송사들은 멤버 지민이 지난해 3월 원자폭탄 폭발 후의 버섯구름 모양 등이 섞여 있는 광복절 티셔츠를 입었던 걸 뒤늦게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론 한국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일본 내에서도 나옵니다. 물론 일본의 이런 행태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미국 CNN 등 주요 외신들은 세계적 스타인 BTS의 공연 취소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있어 전 세계의 젊은 한류 팬들에게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반응이 우려스러운 것은 한일 문화교류에 미칠 부정적 영향 때문만이 아닙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이라는 일본 사회의 얕음을 확인하는 것은 이웃국가로서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 보인 치졸한 행태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자칭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지도국가’ ‘모범국가’를 지향한다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를 딛고 공동 번영을 향해 협력하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이 과연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전망을 암울하게 합니다.

‘죽어라 한국’ 등의 자극적 현수막과 대형 욱일기를 든 시위대가 도쿄 도심을 2시간 넘게 행진하는 모습은 표현의 자유, 의견의 다양성 차원을 넘어 일본에 잔존해 있는 뿌리 깊은 제국주의적 속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일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태들에 일본 정부와 지식인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국제사회가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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