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중·참의원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시정연설에서 강제징용 배상판결, '레이더-초계기 저공비행 갈등' 등 여러 이슈가 갈등 현안으로 부상한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한반도 질서의 재편 흐름에 올라타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는 평가할 일이지만, 진정으로 미래지향적 동북아 평화 질서 구축이라는 담대한 틀에서 북일 관계와 한일관계를 사고하는지는 회의적이다.
지난해 시정연설과 비교할 때 올해 남·북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대조적이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토록 해야 한다"며 강경 기조를 유지했던 것과 천양지차이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협상 국면으로의 변화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홀로 거부하다가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대북 정책 변화를 불가피하게 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지난해 연설도 '의도적 홀대'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무시' 전략으로 임했다. '종군 위안부' 문제로 갈등하던 지난해 연설에서는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과는 양국 간 국제 약속, 신뢰의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시대의 협력관계를 심화하겠다"고 원론적 언급이라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한일 군사충돌 우려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침묵'은 계산된 것이다. 화해 무드로 대응하자니 일본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고, 비판 기조로 언급하자니 외교적 부담을 자초할 것 같아 의도적인 '한국 외면'을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일관계에 대한 과거 회귀적, 우익적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북일 관계 정상화라는 목표에 다다르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북일 수교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또 북일 수교는 한반도의 분단체제 종식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 공동체 질서를 향한 관문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2차 대전 전후 유럽연합(EU)에 이르는 공동체 질서가 구축된 데는 가해자인 독일의 그치지 않은 과거사 반성과 행동이 밑바탕이 됐다. 일본의 그릇된 과거사 인식과 군사 대국화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한일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북일 수교의 길도 험로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북일 수교를 거론하면서 "동북아를 정말로 안정된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발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 시대의 근린외교를 힘차게 펼치겠다"고 말했지만, 매우 공허하게 들린다. 아베 총리는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서 평화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어떤 건설적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진정 새로운 발상에 입각한 새 시대 근린외교를 추구한다면,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들의 과거사 고통을 직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겸허한 자세와 노력이 먼저다.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는 '서울'을 외면해서는 '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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