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15일 2022년까지 운영 허가를 받은 경북 경주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경북 영덕, 강원 삼척 등에 짓기로 했던 신규 원전 4기 건설도 백지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30년 운영 허가가 만료됨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를 거쳐 10년간 연장 운전을 결정하고 노후 설비 교체, 안정성 강화에 56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지난해 5월 계획예방정비를 받은 이후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는데 한수원이 긴급이사회를 열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원전 수명을 연장해 60년 이상 가동하는 상황에서 36년 만에 가동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6·13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여세를 몰아, 정부가 논란이 여전한 탈 원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원전 폐쇄를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긴급 이사회가 ‘날치기’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15일 오전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건설 백지화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이사회 개최 사실을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사들에게도 무슨 작전을 수행하듯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고 합니다. 회의 장소는 한수원이 아닌 서울시내 한 호텔이었습니다. 한수원 측은 원전사업 중단에 따른 보상 문제에 대한 정부 협의가 전날 끝나 바로 이사회를 연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조기 폐쇄가 결정된 월성 1호기는 종전 2012년에서 2022년까지 10년 연장하기 위해 5600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천지1호기 등 원전 4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6기에는 설계 용역과 부지 매입 과정에서 3400억원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한수원의 이번 결정으로 1조원 가까운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간 셈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에도 공정률 28%의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했다가 3개월 만에 재개하는 바람에 1000억원의 예산 낭비를 초래한 적이 있습니다.


긴급 이사회 의결도 정해진 수순에 의한 요식행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사회에는 이사 13명 가운데 12명이 참석했습니다. 12명 중 11명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12명 전원이 신규 원전 4기 백지화에 찬성했습니다. 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숙의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사회의 결정에는 이런 숙의 과정조차 없었습니다. ‘소통 정부’에서 중시되는 절차적 정당성마저 잃었습니다. 한수원 노조가 “도둑 이사회의 결정은 원천 무효”라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때는 지역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는 기습 결정이라는 비판입니다. 40년간 지속된 원전 폐쇄는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마땅히 주민들에게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사업 종결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월성 1호기 계속 운전에 투입된 5600억원과 신규 원전 4기 매몰 비용 3100억원 등 총 8700억원도 허공으로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손실 비용을 둘러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으로 2029년까지 수명이 끝나는 월성 2~4호기, 고리 2~4호기 등 노후 원전 10기도 수명 연장 없이 폐쇄 운명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지금도 국내 원전 24기 중 정비 등의 이유로 일시 운영이 중단된 원전은 8기에 달하고 이로 인해 전력구매단가도 치솟았습니다. 정부는 전력 수급과 전기요금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시행 1년을 맞은 탈원전 정책 후유증도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전 공기업 부채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자 LNG, 신재생에너지 등 고비용 발전 비중을 늘린 결과입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원전보다 약 2.5배 높습니다. 이대로 가면 전기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6·13 선거’에서 여당에 표를 몰아줬지만 탈원전을 놓고 찬반 투표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재벌개혁,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도 밀어붙일 태세입니다. 선거 승리가 모든 것을 다 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전력은 원전 대신 발전단가가 비싼 천연가스,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을 늘리다 이미 두 분기 연속 적자를 냈습니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탈원전 정책은 원전 수출에도 찬물을 끼얹게 됩니다. 탈원전이 가속화할수록 국가와 국민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1982년 발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 10년 연장 허가를 받았습니다. 한수원은 5600억원을 들여 노후설비 교체 등 안전성을 강화한 뒤 2015년 6월 발전을 재개했습니다. 당시 안전에 문제가 없다던 한수원이 태도를 바꾼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부의 공약대로라면 국내 24기 원전 가운데 2030년까지 10기가 설계 종료로 폐쇄되고, 추가 건설이 예정된 9기는 백지화됩니다. 100조원을 투입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7%에서 20%까지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일조량이나 좁은 국토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태부족인 한국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183기 중 165기는 아직 가동 중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결정이 6·13 지방선거 압승 이후 곧바로 나왔다는 점은 개운치 않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포함한 탈 원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해왔는데 선거 압승에 고무돼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지방선거 승리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의 찬성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탈원전 갈등이 재점화될까 걱정이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