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친북 행태가 논란입니다. 국민주권연대 등 13개 단체가 서울 한복판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언문’을 내놨습니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조직의 명칭부터 김일성 일가의 ‘백두 혈통’을 떠받드는 식입니다. ‘자주 통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진정 어린 모습에 우리 국민 모두 감동’ 운운한 선언문도 김정은 찬양 일색입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9월 평양 방문 당시 동원된 북한 주민들이 흔들던 것과 유사한 조화를 흔들며 김정은을 연호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나라냐’고 했던 이른바 ‘촛불 민심’의 개탄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거듭된 공언을 되새기기조차 민망하게 하는 또 다른 예가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에 대한 협박입니다. 북한 실상을 증언해온 태 전 공사는 ‘통일에 방해되는 행동을 당장 멈추라’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의 이메일·전화 협박을 받고, 6일 예정했던 한국기독교회관 강연을 취소했습니다. 그 단체 일부 회원은 지난 8월 ‘태영호·박상학 체포 결사대 감옥행’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태영호·박상학 겁에 질리게 만들기’를 활동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최악의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북한 정권을 떠받드는 반역적 행태가 만연해서는 결코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부터 지나친 김정은 치켜올리기를 자제하고, 친북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북한 정권의 앞잡이 노릇과 다름없는 친북 선동까지 용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 미 국무부가 8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회담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마침 이날은 중간선거 결과 야당인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 탈환에 성공함으로써 미 의회의 권력이 ‘상원-공화, 하원-민주’의 분점 구도로 바뀐 날입니다. 미 국무부가 “서로의 일정이 가능할 때 회담을 다시 잡을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와 맞물려 북핵 협상에도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이번 뉴욕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을 복원시킬 절호의 기회란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컸습니다. 내년 초로 미뤄진 북·미 정상회담의 전초전이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리스트를 미국에 제출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공격할 목표 리스트를 제출하라는 것이냐’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핵 리스트 제출은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할 핵심 조치입니다. 오히려 북한은 최근 부쩍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이번 뉴욕 회담을 연기하자고 한 것도 북한이라고 합니다. ‘회담이 무산되거나 동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는 외교부의 설명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위원장을 독식합니다. 하원의 모든 위원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2020년 대선 탈환을 목표로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과 이란 정책 등 모든 정책에 강하게 개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화로 북핵 해결’ ‘제재 유지’ 등 대북 정책 골격엔 이견이 없지만 그동안 ‘두루뭉수리’식으로 진행된 협상에 대해 현미경 검증을 들이댈 것이란 관측입니다. 이란 핵협정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화된 협상과 함께 테이블 아래로 내려둔 북한 인권 문제도 의제에 올릴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북핵 협상이 진전이 없을 경우, 트럼프가 더 이상 대북 협상에 열의를 보이지 않을 수도, 또는 미국의 실질 위협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만 해결하고 한국의 안보는 뒤로 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로선 두 가지 다 용납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입니다. 미국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어쩌면 진짜 시험대에 선 것은 우리 정부입니다. 미국에 “핵 리스트 제출은 뒤로 미루자”는 제안까지 해가며 남북관계에 속도를 높이는 사이 한·미 간 균열은 만천하가 알 정도가 돼버렸습니다. 미국의 정치 판도가 변한 만큼 남북 관계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체가 기정사실화하며, 청와대 수석비서관실의 업무영역 조정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장 실장은 6일 국회에서 “부동산 정책을 사회수석실에서 경제수석실로 이관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종원 경제수석비서관이 5일 국회에서 “그동안 사회수석이 맡아온 에너지와 탈원전 정책을 한 달 전부터 제가 맡아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이라고 한 만큼, 김수현 사회수석이 총괄하던 부동산·탈원전 정책이 모두 경제수석에게 넘어가는 셈입니다. 

탈원전과 부동산은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실패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정권 코드에 집착한 탈원전으로 세계적인 원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피해 배상 청구서도 날아오고 있습니다. 원전 기술을 선도하던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서울에서만 올해 들어 아파트 가격 21.6% 상승을 자초했습니다. 역대 정부 출범 직후 1년 동안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노무현 정부 14.07%, 이명박 정부 3.16%, 박근혜 정부 1.0%였습니다.

그런 실패의 핵심 장본인이 청와대에서조차 ‘왕 수석’으로 불리는 김 사회수석입니다. 사회수석에게 교육·복지·문화·체육 분야만 남기는 식으로 업무만 조정할 일이 아닙니다. 실정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실패를 인정하긴커녕 업무 영역의 일부를 조정하면서, 김 수석을 정책실장으로 더 중용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입니다. 업역 조정이 ‘차기 정책실장 김수현’을 고려해 인수인계 차원에서 업무를 미리 분산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의 참모진 개편이 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것이어선 안 됩니다.



정부가 올해와 내년도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에서 사용하고 남은 12조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 예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교통시설특별회계는 도로·철도·공항·항만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전용 예산입니다. 이 정부가 토목공사 중심의 SOC 투자를 줄이면서 막대한 잉여금이 발생하자 이를 공자기금 계정으로 옮겨두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올해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으로 18조2400억원을 편성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예산을 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도로·철도 등의 확충을 위해 쓰이는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이 6조4000억원이나 남았습니다. 편성된 예산의 3분의 1 이상이 남은 것은 드문 일입니다. 예산 잉여금은 내년도 세입으로 넘기고 그만큼 새 예산 편성은 줄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돈을 공자기금에 예탁하고 내년도 예산을 또 5조6000억원 정도 남을 만큼 편성해 총 12조원을 공자기금에 예탁할 것이라고 합니다.

교통시설특별회계 잉여금을 공자기금에 넣어두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렇게 큰 규모의 잉여금을 예탁한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공자기금에 들어간 돈은 국회의 개략적인 총액 심사를 거쳐 남북 협력기금 등 용도가 다른 회계나 기금으로 옮겨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정부는 남은 돈을 감안해 내년도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주장에 '대규모 인프라 사업, 남북 경협 등 향후 SOC 예산 수요 증가 등에 부응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국내 철도·도로 확충에 쓰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예산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돌려쓰겠다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얼마 전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개·보수 작업에 초기 비용 일부만 승인받은 뒤 실제로 100배가 넘는 돈을 쓰더니 이번엔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던 SOC 투자 예산을 편성했다가 일부러 남겨 그걸 북을 돕는 데 쓰겠다는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눈을 가리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는데 그런 배짱도 놀랍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입니다.

북한을 지원하는 돈은 국회에서 철저하게 심사받아야 특히 국민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대북 지원 예산은 늘 이렇게 국민과 국회가 잘 모르게 운용하는듯 합니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하면 우리가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숱하게 약속을 어겨온 북한 정권의 어떤점이 달라졌다고 믿고 이렇게 국민 세금으로 선결제하려는 걸까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제 당·정·청 회의에서 2%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성장률에 대해 "우리나라와 경제 수준이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와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우다 경제 침체를 불렀다는 지적에 대해 반박한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독일·프랑스·일본은 2%에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12배나 큰 미국 경제가 우리보다 높은 2.9% 성장하는 것을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고도성장을 마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독·프·일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 경제는 아직은 성장 동력이 유지돼야 하는 경제입니다. 그런데 경제의 종합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성장률이 2%대 후반에 그쳐 세계 평균(3.7%)에 못 미치고, 우리 경제를 추격하는 신흥국(평균 4.7%)에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면 정부는 변명이 아니라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정부가 장담했던 3% 성장에 실패한 것은 미·중 무역 전쟁 등 대외 요인의 영향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소득 주도 성장론이라며 최저임금을 과속 인상해 고용 참사라고 할 정도로 일자리가 줄고, 노동 개혁과 규제 혁신이 빈 수레에 그친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췄지만,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인 장본인이 "2%대도 괜찮다"고 합니다.


"근거 없는 경제 위기론은 국민의 경제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말도 했습니다. 조선·해운이 흔들리고 자동차 산업도 위기 조짐이 보입니다. 81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의 견인차 노릇을 하는 반도체 호황이 당장 올해 4분기부터 저물어간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대외 불안 요인도 적지 않습니다. 결코 안이하게 볼 일이 아닙니다.

장하성 실장은 소득 주도 정책 실패 대책으로 세금 퍼주기 한 것도 "국민이 낸 세금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고 했습니다. 그에 앞서 일자리 대책이라며 쓴 54조원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장 실장은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일부 주장은 한국 경제를 더 큰 모순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장을 적대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는 것을 보면 경제팀이 바뀌어도 정부 정책에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유엔이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한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인권 단체들이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지난주 방한한 휴먼라이츠워치(HRW) 사무총장은 "인권변호사인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인권 논의 거부는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HRNK)도 "한국 정부가 인권 단체가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USB까지 검열한다"고 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 성명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배제된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말 상정된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은 이달 중 위원회를 거쳐 다음 달 본회의에서 최종 채택될 예정입니다.

북한의 인권 유린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공개된 실태는 더욱 참혹합니다. 탈북하다 붙잡혀 집결소에 구류된 여성들은 심문을 이유로 밤마다 불려 나가 성폭행을 당합니다. 장마당 단속·감시 관리들은 장사하는 여성들을 '성 노리개'로 삼는다고 합니다. 여전히 곳곳에서 공개 총살이 이뤄지고, 정치범수용소에는 12만명 이상이 갇혀 구타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내 진보 진영은 참혹한 북한 인권 문제는 아예 눈감아왔습니다. 정부는 북한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정보 시스템의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재정 손실을 이유로 북한 인권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마련했던 사무실도 폐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외신 인터뷰 때 '세계적 인권 탄압국의 지도자와 손잡는 게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국제적으로 압박한다고 인권 증진 효과가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니 여권 인사들이 북한 집단 체조를 보고 "일사불란함이 대단하더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지경까지 온 것 아닐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는 좋은 얘기가 많았습니다.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이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사는 나라 등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가 공정과 평등만 얘기하고 있을 상황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실업과 양극화, 자영업자 몰락을 비롯해 온갖 경제지표가 추락하고 있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민생경제 현장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함께 잘사는 나라가 아니고 함께 못사는 나라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경제 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고령층 등 힘겨운 분도 생겼지만 함께 잘살자는 노력과 정책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체돼야 할 청와대 경제팀이 써준 원고여서 그런지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여전히 외면하는 내용입니다.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실용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라는 지적에 대해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습니다.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입장입니다. 경제가 이렇게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도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강변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아니라면 우선은 실용적인 정책으로 경제부터 살리고 볼 일입니다. 시정연설에서 추락하는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비전과 대책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고 규제개혁 등 투자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연설이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이에 따라 이번 시정연설에서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육성시킬 수 있는 좀 더 진전되고 구체적인 비전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시장 논리보다는 가치와 철학을 중심으로 경제 운용을 하다보면 자칫 실용보다는 이념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을 비롯해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경제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경제 정책을 운용해야할 시점입니다. 이미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말입니다.



대법원이 어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하라며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한발 더 나가 종교적 신념이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소수자를 관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이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14년 만에 정면으로 뒤집은 것입니다. 중대한 문제에 대한 법원 판단이 철마다 달라지는 유행 같습니다.

매년 종교와 신념 등을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고 교도소로 가는 사람이 수백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교도소 대신 소방서나 요양시설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도록 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결을 내리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안보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평화가 온 듯하지만 실은 정규군만 120만명에 달하고 핵과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 지척에서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엄중한 안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라라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존중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는 처지인지 궁금합니다. 이 판결을 보면서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져 국가 생존을 놓고 공론을 벌이는 것만 같습니다. 모든 것이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을까요.




한미 양국이 남북 협력에서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문제를 협의하고 대북 정책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워킹그룹’을 설치키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30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 중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워킹그룹 구성에 대해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 목적에 대해선 ‘비핵화를 위한 노력, 제재 이행, 남북 협력에서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 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 강화’라고 합니다. 남북 관계가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문재인 정부 입장과, 비핵화를 위해 강력한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차 때문에 불협화가 노출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이 문 정부 대북 정책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필요하면 ‘감시’하겠다는 의사로도 비치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 촉구했고, 통일부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 이어 남북철도연결 공동 조사 등에 대해서도 제재 예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이 아예 제재 이행 및 준수를 위한 한미 공동 상설 시스템 구성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그만큼 불신이 심각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미 재무부는 최근 그룹 총수가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들에 연락해 대북 사업에 대해 문의했다고 합니다. 재무부는 지난달 7개 국책·시중 은행에 전화를 걸어 제재 준수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심상찮은 일입니다. 미국 노력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비칩니다. 현란한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아직 없습니다. 긴밀한 한미 협조가 필요한 때입니다.



북미 회담 실무를 담당하는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그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습니다. 미국의 북핵 담당자가 외교·안보 책임자인 정의용 안보실장보다 임 실장을 먼저 찾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미국이 극히 이례적인 요청을 한 것은 대북 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안보실장이 아닌 임 실장이라고 보고 그에게 직접 남북 관계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반응을 듣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외교 라인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와 별개로 진전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이 이를 무시하자 임 실장을 직접 만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비건이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6자회담 수석 대표 협의를 하고 1주일 만에 서울로 온 것은 미국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제재 수위를 끌어올렸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고 봅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때까지는 제재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국이 철도 연결 사업 등 남북경협에 잇따라 제동을 걸자 유럽에 가서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최근 미국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 상당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우려하거나 심지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통일부 장관은 공개 석상에서 "미국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북한은 지금 노골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비핵화 협상은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미측이 지지난주 "열흘 내에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던 고위급 회담은 북한의 거부로 아직 성사되지 않고있습니다. 북한은 핵 폐기의 실질적 로드맵을 논의할 실무급 협상에는 아예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 경협에 조급증을 보이면 미국의 의심을 사게 되고 이 의심이 쌓이면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은행이나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검토하는 것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장담할 수 없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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